본문 바로가기
여행/아시아

싱가포르에 갇혔다가 탈출

by 레잇블루머 2015. 7. 12.

어제.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는구나. 들뜬 마음으로 구매한 기념품들을 가방에 차곡차곡 넣고 싱가포르 창이 공항으로 향했는데, 체크인 데스크에서 묻더라. "환불해드릴까요? 아니면 다른 날짜로 미루시겠어요?"

어리둥절해져서 우리는 체크인을 하려고 한다 했더니, 못들으셨냐고? 발리 근처 이스트 자바 섬에 있는 라웅(Raung)산이 화산재를 내뿜어서 근처의 공항 4개가 모두 문을 닫은 상태라고. 7월 10일 오늘(그니까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어제) 발리 공항에서 출발하거나 거기로 가는 모든 비행편이 취소되었다고. 너무 놀라서 벙쪄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우선 우리가 비행편을 예약한 타이거 항공에서 공항 근처의 호텔 숙박을 제공해주기로 해서 우선 돌아왔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뉴스를 검색해보니 정말 근처 화산이 활동을 시작했더라. 이 화산재라는게 운항 중인 항공기에 상당히 위험하게 작용할 수 있는거 같던데, 화산재가 엔진으로 들어갈 경우 그 안에서 녹아서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거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가느니 차라리 공항이 문을 닫은게 다행이다 싶었다. 그리고 항공사에서 제공한 호텔(Capri by Fraser)이 꽤나 편안하고 바로 옆에 적당한 사이즈의 쇼핑몰이 있어서 며칠은 별 생각없이 공항이 문을 열때까지 시간을 죽일 수 있겠더라. 



중앙에 보이는 까만 부분이 라웅 화산에서 뿜어져나오고 있는 재들이다.

[출처 : http://www.wired.com/2015/07/volcanic-ash-closes-airports-across-indonesia/ ; http://lance-modis.eosdis.nasa.gov/cgi-bin/imagery/single.cgi?image=Indonesia.A2015191.0250.250m.jpg] 


----- 7월 12일 일요일 작성

그런데 또 상황은 급변했다. 일어나자마자 조식먹고 와서 타이거 항공에 전화해보니 7월 15일까지 발리로 가는 모든 항공편이 취소되었단다. 게다가 호텔도 제공해주지 않는다고. 어떡해야하나 고민하다가 호텔 리셉션에 가보니 항공사에서 일요일까지 하루 더 호텔을 제공해주기로 했다고 한다. 이렇게 여기저기 말도 다르고 뭘 믿고 어떻게 결정해야하나 고민하다가 혹시 하는 마음으로 항공권 예약 사이트을 보니 7월 12일 오후 3시에 발리 가는 타이거에어 항공권이 딱 판매중인게 아닌가. 이게 뭐지 하고 뉴스와 트위터를 검색해보니 발리 공항이 문을 다시 연듯 싶었다. '비행기가 있을 수 있겠구나!' 희망이 피어오르고 그 즉시 남편이 호텔 셔틀을 타고 공항으로 갔다. 혹시나 비행편이 있으면 예약을 하고 나를 부르기로. 

초초한 마음으로 한 시간 정도 대기하니 우선 항공사에서 연락이 왔다. "**님께서 방금 오늘 오후 3시에 발리로 가는 항공권을 예약하셨고, 이제 님께서도 여기로 오시면 된다고." 빠른 속도로 짐을 부랴부랴 싸고 있으니 또 전화가 왔다. 남편이 "나 비행기표 끊었어. **이가 직접 와야 보딩패스를 준대. 어서와." 짐을 다 싸고 나가려는데 또 전화가 왔다. 이번엔 호텔 리셉션 "비행편이 재개됬답니다. 어서 가서 flight 을 catch up 하세요." 

그렇게 나는 다른 많은 난민(?)들과 함께 호텔 셔틀에 실려 창이공항에 당도하였고, 무난히 오후 3시 20분 비행편에 체크인한 뒤 발리로 향할 수 있었다. 고작 예정된 출발일보다 하루 늦어진 거지만 어찌나 많은 일들이 있었던 느낌인지. 포기하고 싱가포르에 몇 밤 더 지내면서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이 참에 태국이나 갔다올지 아니면 배를 타고 발리를 갈지 정말 별의별 생각들을 다했더랬다. 

지금 발리의 집으로 무사히 돌아와 아이스 커피를 만들어 마시고 파트너 언니가 사다놓은 치즈케이크와 딸기를 먹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노라니 이 모든게. 심지어 싱가포르에 있었던 시간마저 꿈처럼 느껴진다. 발리는 내일부터 큰 명절인 갈룽안이 시작된다. 청소하시는분이 무려 일주일을 못오신다고. 편한 거는 몸이 빨리 적응하는지, 벌써부터 일주일 스스로 청소할일에 골치아파하는 나를 보니 일상으로 돌아온게 맞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