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의 사실상 마지막 날; 내일 오후 3시 비행기로 다시 발리로 돌아가므로.
남편과 내가 둘다 너무나 좋아하는 티옹바루에서 오후 시간을 보내기로 하였다. 티옹바루는 싱가포르의 근대식 건물들에 세련된 카페, 샵들이 들어서면서 매력적인 거리를 형성하고 있는데, 한국으로 치면 경리단이나 가로수길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훨씬 조용하고 상업화가 덜 되어서 차분한 마음으로 산책할 수 있다.
어디서 점심을 먹을까 고민하며 고르다가 Yong Siak St 에 있는 하이난식 집밥 식당으로 들어갔다.
아직 본격적으로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직전이었으므로 한가하였다.
항상 있는 메뉴는 이렇고, 그날그날 메뉴가 달라진다. 우리는 크리스피 치킨과 진저, 삼발 새우, 프렌치빈 볶음 요리에 하우스 허벌티 두 잔을 시켰다.
이 허벌티가 정말 오묘한 맛이었음. 남편은 한약 맛이 난다고 절반 정도밖에 못먹었는데, 난 웬지 입맛에 맞아서 쭉 들이켰다. 몸에 좋을 듯한 그런 맛. 60-70년대 집에서 정말 순수 재료로만 끓여먹었을거 같은 그런 맛.
우선 삼발 쉬림프가 나왔다. 매콤하니 굿!
와. 이게 정말 대박이었는데, 생강으로 맛을 낸 바삭한 치킨. 정말 맛이 좋았다.
이게 일하시는 분의 추천을 받아 시킨 프렌치빈. 아삭거리는 식감도 좋고, 간도 딱 좋았다. 배부르게 밥 한 접시를 비울 수 있었는데, 남편은 싱가포르에서 먹은 음식들 중 이 집 게 제일 맛있었단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는 주변 구경을 나섰다. 우선 들른 곳은 Books actually.
흥미로운 책들을 많이 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의 신진 작가들이나 책을 내고자 하는 개인들의 출판과 전시를 도와주는 곳이다. 나도 오늘 어떤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개인이 낸 귀여운 만화/삽화집을 한 권 사왔다. 작가 사인이 들어간 권이 세 개 남아있어서 그 중 하나를 집어왔다. 뚱뚱한 베트맨과 슈퍼맨의 우정을 그린 만화집인데 정말 귀엽고 흐믓한데 동시에 웃겨서 아껴서 한장한장씩 읽고있다. 아래는 이 서점의 모습. 외관도 매력적인데, 실내도 정말 편안하고 다양한 책들을 우연히 접하기 좋은 구조로 되어 있다.
근데 무엇보다 이 서점의 매력은 이 곳에서 지내는 두 마리 고양이.
우연하게도 이렇게 등을 구부리는 타이밍에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음. 정말 유연하구나..
인형처럼 바깥을 주시하고 있던 녀석. 저 앞발이 어찌나 하얗고 통통해보이던지 너무 만져보고 싶었어!
이거 무슨 종인지 정말 알고싶다. 나중에 꼭 닮은 고양이 한마리를 키워보고 싶다!!
고양이들은 서점을 찾은 손님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그 외에도 매력적인 가게들이 많았다. 그 중 한곳이었던 슈퍼 파머스.
식물들을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 시간에 15달러정도인가를 내면, 앉아서 식물을 보며 수채화를 그릴 수 있다. 재료나 식물은 모두 이 가게에서 제공한다. 그림 그려본지 정말 오래되었는데... 20대 초반에 그림그려보겠다고 집에서 이젤이랑 스케치북 사다가 막 예술혼을 불태웠었는데, 붓을 들어본지 10년은 족히 되었구나.. 내 잠든 감성을 다시 깨울 때가 되었어..
구경을 어느정도 하고는 한 베이커리/카페에 들어가서 커피와 정말 향기로웠던 얼그레이 라벤터 컵케이크를 먹었다. 나와 남편은 이 베이커리의 인테리어나 느낌, 소품들이 너무 맘에 들어서 한참을 하나하나 꼼꼼히 보면서 나중에 이런 예쁜 장소를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다.
컵케이크는 언제나 좋아요.
티옹바루를 어느정도 보고는 택시를 타고 차이나타운에 갔다가 남편이 전자제품 살 게 있대서 서울의 용산과 같은 후난몰(funan mall)로 걷기 시작했다. 싱가포르는 원체 쇼핑몰이 많고 건물마다 냉방을 하기 때문에 덥다는 걸 잘 못느끼는데, 밖에 나와 조금만 걸으면 이 섬이 얼마나 덥고 습한지 바로 깨닫게 된다. 10분 걷고는 완전 지쳐버렸어.
후난몰 바로 앞에 있는 귀여운 소방서. 장난감 건물처럼 생겼다.
후난몰에 드디어 도착. 용산처럼 막 사람들이 불러세우고 만질까봐 걱정했는데,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고 아주 젠틀하고 조용하고 깔끔했다.
본격적으로 쇼핑 전에 목을 축이러 한 주스바를 찾았는데, 이렇게 사과를 먹기좋게 짤라서 꼬치에 꽂아 팔더라. 아이디어가 좋아서 찰칵.
<사탕수수+레몬>을 시켰는데, 와, 정말 시원하고 맛있었다. 인위적인 단 맛이 아니라 뭔가 말로 표현하긴 어려운데, 이제껏 처음 먹어본 시원하면서도 달달한 그런 맛? 근래 먹은 차가운 음료 중 정말 최고로 맛있게 마셨다.
후난몰에서 호텔로 돌아와서 잠시 쉬고, 저녁식사를 어디서 먹을지 고민하다가 남편의 의견에 따라 오차드 로드에 있는 샤브샤브집을 가기로 했다. 샤부사이라는 곳인데, 무제한으로 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를 제공하는 샤브샤브집이다. 육수도 5가지 정도 중 2개를 선택가능하고, 롤, 국수, 야채 등 부페에서 잔뜩 집어다 먹을 수 있다. 오랜만에 부페에 왔더니 정신을 못차리고 먹어서 나올 때 정말 가관이었다. 얼굴은 빨갛고 배는 불러서 뒤뚱거리고 땀은 주륵주륵 흘리고 있고.
이렇게 싱가포르에서 3번째 날이 지나갔다.
이제 자고 내일 일어나면 발리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한다. 시골(?)에만 있다가 오랜만에 문명 생활을 즐겨서 좋았던 이번 여행. 언제나 여유롭고 한가한 발리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서, 나중에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한번 오고 싶다. 싱가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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