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유럽

지난 주말의 피렌체

by 레잇블루머 2015. 3. 4.

3월이 되었다. 아주 춥지는 않지만 비가 자주 오고 구름이 꼈던 피렌체의 겨울도 어느덧 물러가고 봄이 왔음을 물씬 느끼게 된다. 오늘 산책길에 마주친 사람들 중엔 시원하게 셔츠나 티셔츠만 입고 있는 이들이 많았고 별 생각없이 겨울 잠바를 걸치고 온 이들은 더운 기색이 여지없이 엿보였다. 나도 티셔츠 위에 스웨터를 입고 나갔다가 땀이 나서 스웨터는 벗어버리고 허리에 대충 두르고는 피렌체의 좁은 미로같은 길들을 걸어다녔다. 

오늘은 발리에 있는 친구에게 웨딩 선물을 소포로 보내보았는데, 이탈리아에서 우체국을 이용하는 것은 처음이고 게다가 이탈리아어를 전혀 못하기 때문에 긴장하면서 서둘러 출발했다. 새벽에 잠들고 정오 즈음해서야 일어나는 나로서는 서둘렀다고 했는데 막상 우체국에 12시 좀 넘어 도착하니 어이없게도 문을 닫는단다. 영어가 짧지만 친절한 우체국 아주머니가 문을 닫는 와중에도 우선 소포 상자를 하나 구입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피렌체에서 유일하게 저녁까지 하는 우체국 위치를 지도에서 콕 찍어주셨는데, 또 거기까지 그 큰 상자를 들고가느라 어찌나 땀이 나던지. 결국 찾아서 어찌어찌 보냈는데 우선 상자가 너무나 커서 그 안에 내용물이 발리까지 가는 도중에 심히 흔들리고 부딪힐듯 하여 걱정이 되고, 게다가 배송비가 40유로나 들었으므로 이 가격에 놀라 앞으로 해외에서 소포 발송은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선물 가격의 절반 가까이가 배송비로 들다니.. 이러면 괜히 억울해져.. 

아무튼 이번에 결혼하는 이 발리 친구는(진짜 발리인임) 우리 포토그래퍼인데 너무나 좋은 사람이라 결혼식 참석은 못해도 꼭 챙겨주고 싶어서 신경을 썼다. 이따금씩 결혼 준비 소식이 들려오는데, 발리 사람들 결혼식 준비하는 과정을 들어보면 우리나라 결혼 문화는 그에 비해 아주 간단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복잡하고 체력적으로 힘들어 보인다. 결혼식 자체를 우선 한 1-2주 동안 진행을 하고 그 전에는 몸과 정신 속의 악한 기운을 몰아내기 위해 집 안에만 있는다고 한다. 예식에 필요한 준비사항들도 집에서 손수 만들고 온 가족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 그리고 심지어 이웃 마을 사람까지 다 오기 때문에 그 식사 준비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정말 발리식으로 결혼하면 두 번 결혼하긴 힘들어서라도 결혼 생활을 잘 유지해야겠다는 결심이 서지 않을까 싶다. 

아래는 지난 주말에 남편과 점심 먹으러 나갔다가 찍은 사진들. 

날씨가 참 좋았다. 매일 보고 있는 광경이지만 날씨가 좋을 땐 꼭 멈춰서서 한 장 찍어보곤 한다. 구름이 낮게 깔려서 손에 잡힐 것만 같아. 

아주 마음에 드는 젤라또집을 발견했다. 젤라또는 자주 먹어보긴 했는데 그때마다 맛있는 줄은 알겠지만 그저 그 뿐이었다. 하지만 이 집 젤라또를 맛 본 이후, 살짝 뇌에 전기가 통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공기의 틈을 찾아보기 힘든 밀도 높은 부드러운 크림이 차갑게 혀를 감싸고, 각각의 맛은 그 이름에 걸맞는 진짜 재료를 느낄 수 있어 그야말로 완벽하다. 쇼핑 다녀오는 길에 사먹었다가 반해버려서 나갈때마다 꼭 하나씩 사먹고 있다. 가격은 2유로에 맛은 3가지 고를 수 있는데, 근래 내가 쓴 돈 중 가장 그 효율이 높은 소비가 아닌가 싶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외출할 때마다 반드시 들러서 사먹고 있다. 오늘도 물론 먹었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맛은 nocciola(헤이즐넛), yogurt nutella. 이 두개는 무조건 하고 남는 하나는 그 때그때 새로운 것으로 골라 먹는다. 


걷다가 어떤 조용하고 한적한 골목에 이런 생파스타를 만들어 파는 가게를 발견했다. 들어보니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이런 프레쉬 파스타를 자주 먹고, 남부에서는 드라이 파스타를 많이 먹는다더라. 어느 슈퍼를 들어가든, 어느 레스토랑을 들어가든 신선한 프레쉬 파스타를 먹을 수 있어 행복한 요즈음. 하지만 드라이 파스타도 그 매력이 있어서 뭐가 더 낫다고 얘기하긴 어렵다.



걷다보니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이르렀다. 난 이 성당을 보면서 참으로 아담하고 여성스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 앞에서 누군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정말 좋았다. 발길을 붙잡을 정도로. 길거리 연주자나 가수로부터 감동을 받는 경우는 드문데, 이 분의 노래를 들으면서 완전 심취해버려서 남편의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가서 CD 를 하나 사왔다. 가격은 10유로. 


성당 근처에 마켓이 있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서 2층으로 올라가면 아주 개성있는 식당들이 줄지어 있다. 그 중 우리가 꼭 먹어보자 하고 점찍어놓은 곳이 있었는데 바로 여기. 

라 그란데 비앙카. 

피렌체의 유명한 치아니나 소고기로 햄버거를 만들어 파는 곳이다. 남편과 각각 치즈 버거 하나씩 주문하고 옆에 있는 바에서 맥주를 사와서 냠냠 먹었다. 



아쉽게도 치즈에 가려져서 고기가 안보이는데 정말 끝내주는 맛이었다.

약간 짜긴 짠데, 고기가 원체 신선해서 레어 상태로 구워서 주는데 전혀 비릿한 맛이 없고 육즙은 달콤하기 그지없다.


아래는 마켓의 천장 장식. 

우리나라의 초롱불같기도 하면서 뭔가 운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