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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유럽

바로 눈 앞에 보석을 두고 계속 지나쳤네. 카펠라 브란카치 Cappella Brancacci

by 레잇블루머 2015. 3. 7.

피렌체에 온지 이제 3주 가까이 되었다. 지금 있는 집이 피렌체 중심가와는 약간 떨어져있는 관계로 어디라도 갈라치면 15-20분정도는 걸어야한다. 그리고 가는 길에 항상 지나치던 투박한 모양의 성당. 나는 이 성당이 피렌체에 차고 넘치게 있는 수 많은 성당 중 하나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나의 짐작은 틀렸다. 

오늘 날씨가 좋길래 어디를 가볼까 하고 검색하던 중 이 성당이 나왔는데, 나의 예상보다 훨씬 유서깊고 중요한 곳이었던 것이다. 산타 마리아 엘 카르미네(Santa Maria del Carmine). 그리고 그 옆에 깊숙이 들어앉은 브란카치 채플(Cappella Brancacci). 이 곳에 마사치오(Masaccio)의 '에덴으로부터의 추방(The expulsion from the garden of Eden)'과 '그림자로 병자를 치료하는 세인트 피터(St. Peter healing the sick with his shadow)' 등의 명작이 보존되어 있던 것이다. 젤라또를 핧으면서 이 성당 앞의 벤치에 앉아서 오고 가는 사람들을 구경만 하면서 '저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뭐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이겠지.'하고 으레짐작만 했었는데, 집 앞에서 겨우 5분 떨어진 곳에 있었고 매일같이 지나다녔는데 이 곳의 중요성을 이제야 깨달았다니.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 라는 속담을 여기에 써도 될랑가... 


산타마리아 델 카르미네의 문은 굳게 닫혀있으므로 이 옆의 작은 문을 통해서 입장한다. 입장료는 6유로. 


들어가면 이렇게 평화로운 정원과 이를 둘러싼 회랑이 나온다. 회랑 벽면에는 마찬가지로 프레스코화가 그려져있는데, 어떤 것들은 손실된 상태로 그대로 남아있고 어떤 면은 아예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다.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이 곳. 어떤 중년 남자가 햇볕이 들어오는 회랑 어느 부분에 그대로 잠자코 서서 이 공간을 응시하고 있었다.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띄운채. 나 역시 오늘 같이 햇살이 좋은 날, 조용한 이 곳을 거닐다보니 문득 유럽에 있다는 사실 자체에 행복감이 밀려들었다. 


네모난 정원을 둘러싼 회랑을 파노라마 샷으로 찍어보았다.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겨서 브란카치 채플로 들어갔다. 

내 아이폰이 과다하게 노출해버렸지만, 햇살은 은은하게 들어와 이 명화들을 비추고 있었다. 하.. 

앞서 마사치오만 언급했지만, 사실 이 프레스코화는 마사치오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라, 마사치오와 그보다 20살 가까이 많았던 마솔리노(Masolino) 그리고 나중에 그들이 그려놓은 프레스코화를 이어 그려나가 완성시킨 필리피노 리피(Filippino Lippi) 이 세 사람의 공동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입장할 때 받은 브로셔에서 읽은 설명을 옮겨보자면, 

14세기 말 브란카치가에 의해 세워진 이 채플은, 부유한 상인이었던 펠레체 브란카치의 주문에 따라 마솔리니와 마사치오가 채플 내부를 꾸미는 일을 맡게 되었다. 이 채플은 원래 성자 피터에게 헌정되었었는데 이에 따라 마솔리니와 마사치오는 성자 피터의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작업을 해나간다. 프레스코화는 1427년 마솔리니는 헝가리로, 마사치오는 로마로 각각 떠나게되면서 중단되었고, 나중에 브란카치가 1436년에 반 메디치가 분파에 공조했다는 죄목으로 추방되면서 채플 자체가 Madonna of the people 에게로 재헌정된다. 

미완성의 프레스코화는 한참이 지난 후인 1481년부터 1483년 사이 필리피노 리피가 손상된 부분들을 복원하고 못다 그린 부분들을 채워나가면서 드디어 완성된다. 이후로 이 프레스코화들은 위험한 사건들을 거치며 파괴 직전의 여러 고비들을 넘기게 되는데 어쨌거나 반복적으로 복원 작업을 거쳐 지금은 본래의 모습을 많이 되찾았다고 한다. 

유명한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 

예전 대학시절, 서양미술사 수업 교재에서 보고 이브의 표정이 너무나 절망적이고 강렬해서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작품이다. 


금단의 사과를 먹고 난생 처음 수치감을 알게된 이브의 절망적 표정. 

삶은 힘들지만 그 중 가장 힘든건 스스로에 대한 좌절과 수치를 느끼게될 때가 아닐까. 타인이 나를 괴롭히고 욕하는 것도 힘들지만, 나 스스로가 나 자신을 부정하고 미워하게 되는 것만큼 괴롭고 극복이 어려운 것은 없다. 


마솔리노가 그린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을 받는 장면. 


여기서도 파노라마샷을 찍어보았다. 어떻게 하면 이 공간의 어마어마함을 사진으로 남겨볼까 요리조리 궁리를 했음. 


아래는 필리피노 리피의 The distribution of St. Peter and St. Paul with Simon Magus and the Crucifixion of St. Peter. 

작품 오른편, 마치 이 장면으로부터 혼자 분리되어 나와 관객을 주시하는 듯한 남자의 눈빛이 인상적이다. 


바로 이 사람. 저 표정과 눈빛이 세대를 초월하여 묘한 심적인 공명을 불러일으키는 듯 하다.



브란카치 채플은 큰 감동이었다. 




나오는 길에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교회(church = chieasa)에 대한 설명이 있어 사진을 찍어와봤다. 듣자하니 1268년에 처음 세워졌는데 1771년에 불이나서 파괴되었다가 18세기에 후기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었다고. 그래도 그 불이 다행히 브란카치 채플까지는 번지지 않아 르네상스 시대의 역작인 프레스코화를 보존할 수 있었다네. 참 다행. 



오늘 방문을 계기로 집 바로 주변에 어떤 다른 가볼만한 곳이 있는지 좀 더 관심을 갖고 찾아보게 되었다. 이미 몇 곳 찜해두었는데, 다음 주에 짬짬이 열심히 돌아볼 계획이다. 혹시 이러려나 했는데, 역시나 피렌체 떠나기 일주일 남겨놓고 바빠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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