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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유럽

보르게세 갤러리와 티라미수 충격

by 레잇블루머 2015. 3. 20.

로마를 세 번 방문하면서 보르게세 갤러리는 안갔었는데, 이유는 단 하나. 미리 예약을 반드시 하고 가야하는 곳이었기 때문. 가면 좋을텐데 생각은 하고 미리 예약하기 귀찮아서 그냥 넘겨버렸더랬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꼼꼼하신 남편 덕분에 오후 1시 - 3시 시간대로 예약을 하고 가게 되었음. 드디어. 

가보니 왜 예약제로 받는지 알겠더라. 우선 갤러리 규모가 상당히 아담하고, 로마 어디가나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학생 그룹 + 패키지 여행객 그룹들이 북적이고 있어서 예약을 미리 한 이들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비좁은 느낌이었다. 어엿한 갤러리를 상상하면은 절대 안되고, 권세있는 귀족이 자신의 저택에 차곡차곡 열심히 모은 작품들을 구경하러 가는 느낌. 규모는 작았지만 엄청난 작품들이 여럿 있었다. 내가 한 때 푹 빠져있던 카라바조의 회화들부터 베르니니의 조각들까지. 그 중 이 아름다운 조각을 도저히 몰래 사진을 찍지 않을 수가 없었지.. 

다프네와 아폴로. 


다프네와 아폴로의 슬픈 엇갈린 인연에 대한 전설을 조각으로 표현한 것인데, 찰나를 묘사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상징성과 표현으로 이 신화 전체를 관통하는 스토리가 조각 전반에 녹아있다. 그리고 저 표정.. 다프네를 갈구하는 아폴로의 표정. 그리고 이유없이 그가 싫고 도망치고자 하는 다프네가 월계수로 변할 때의 저 혼란스러운 얼굴. 정말 사랑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큐피드가 무작위적으로 쏘아대는 화살로 인해 무작정 누군가를 사랑하게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무감각해지고. 나를 사랑하는 이를 사랑하거나, 내가 사랑하는 이가 나를 사랑해주면 편하고 고통이 덜할텐데. 사랑은 만사 어떤 것보다 내 뜻대로 되기가 쉽지 않다. 이 조각은 그러한 사랑에 대한 슬픈 통찰을 너무나 아름답게 묘사하여 이 비극적 사연을 하나의 예술로 승화하였다. 


보르게세를 보러 가기 전에 파니니를 하나 사먹었으므로 돌아가는 길에는 커피와 디저트를 먹기로 했다. 그리고 이 귀여운 카페의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유명인사들이 많이 방문했던 곳이라 하여 더 기대가 갔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티라미수와 다른 케이크류를 하나 시키고 돌아와 앉았다. 


곧 주문한 것들이 나왔는데.. 

이건 티라미수의 저주인지. 지금까지 (피렌체와 로마뿐이긴 하지만) 이탈리아에 한 달간 있으면서 먹어본 티라미수들이 죄다 맛이 없다. 내 입맛에 안맞는 것인지, 그간 먹던 맛이랑 달라서 맛이 없다고 느껴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속 빵은 전혀 촉촉하지 않고 커피 향도 잘 느껴지지 않고 마스카포네 치즈는 쓴건지 만건지. 재료는 빈약하고 위에 끼얹은 크림만 느끼하게 느껴졌다. 더 불만인것은 이 티라미수 가격이 무려 8유로나 했다는 것이다! 


다른 케이크도 맛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전혀 단 맛은 없고 퍽퍽한. 저 위에 올려진 베리들은 보기와는 달리 왜이리 질긴지. 


이 말도 안되는 가격. 화가 나서 사진 찍어옴.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티라미수를 먹고 이렇게 돈을 많이 썼음. 화가난다 화가나! 


앞으로는 아무리 가게가 예쁘고 그럴싸해보여도 반드시 앞에 걸린 메뉴에서 가격을 보고 가자고 남편과 다짐하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재택근무 하는 남편이 오후 3시부터 근무를 시작해야하기 때문에, 우리는 마치 신데랄라처럼 어떤 시간이 되면 땡하고 돌아와야 한다. ㅎㅎ 

계단을 올라가는데, 창틀 위 무언가가 내 눈길을 끌었다.


이 돌벽돌 틈새에 새싹이 돋아있네. 조용히 어딘가에서 날아와 싹을 틔웠다.  이걸 보면서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들은 다 이 새싹과 같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난 곳이 어디든지 간에 태어난 모든 연약하고 순수한 것들을 보호하고 아껴줘야 하는데. 

최근 한겨례 신문에서 이쟈스민 의원이 이주아동 보호 법안을 낸 것을 두고 대중들이 크게 반발하고 악성댓글이 심하게 달렸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미 이주 여성들이나 아동들의 경우, 한국에 간과할 수 없는 사회의 일부로 자리잡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인데, 국적 미취득이나 가난, 차별 등의 이유로 사회적 보호망 밖으로 밀려난 이주 아동들은 아무 잘못 없이 적절한 교육이나 복지 헤택 등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 아이의, 그 부모의 국적이나 피부색과 상관없이 어린아이들은 무조건적으로 필요한 지원과 관심을 받아야한다. 

사람들은 때때로 이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 같다. 이들에게 복지 혜택의 일부를 나누어주면 자기들에게 돌아올 파이의 크기가 작아질 것이라고. 어쩌면 자기보다 더 약한 이들을 공격함으로써 건강하지 못한 집단 의식과 우월감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힘없는 이들을 비방하고 몰아세우기 전에, 균형잡힌 예산 편성과 합당한 복지정책 입안에 실패한 국회와 정부에 책임을 물어야할 것이다. 그 분노의 에너지들이 제대로 향해야할 곳을 향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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