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04년 초 영국 런던. 레스터 스퀘어역 근처 극장에 '브리짓 존스의 일기 3' 프리미어가 열린다고 행사 준비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걸 보았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좋아하여 1편을 5번도 넘게 봤을 21살의 나는 다짜고짜 영화관 앞에 다른 팬들과 함께 줄을 서서 프리미어가 시작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기다림의 끝에 프리미어가 시작되었었는데..
실제로도 바람끼 넘치는 건들건들한 모습으로 휴 그랜트가 등장하고, 러브 액츄얼리에 누드로 기타를 치던 할아버지 배우도 참석차 나타났으며, 통통한 브리짓 존스는 어디가고 날씬하게 살을 쫙 뺀 르네 젤위거가 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을 밟았다. 그리고 내가 가장 고대하던 콜린 퍼스가 등장하였는데, 다른 배우들과 달리 팬들 쪽으로 와서 사인을 해주고 가는 것이다. 나도 그 사이에 껴서 종이를 흔들었는데, 그 많은 손들이 흔들고 있던 종이 중 내 것이 낙점되어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가보로 대대손손 보관하리라!' 라고 다짐하고, 영국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와서 수 차례 이사와 청소를 반복하면서도 이 사인만은 잘 간직해왔는데, 지난 10월 한국을 또다시 떠나게 되면서 드디어 이 사인 종이가 그 운명을 다하게 된 것이다.
이 사인을 받았던 때로부터 10년이 훌쩍 지나 나는 더이상 영화배우에게 열광하였던 20대 청춘이 아니었고, 아무리 이 종이가 소중하다 한들 바다를 건너 모든 살림을 처분하고 가는 마당에 신경써서 챙기는게 구차하게 느껴졌다. 그리하여 기록으로 사진이나 몇 장 찍어두고 이제 이 실물로서 종이와는 작별을 하자고 결심했던 것. 그리하여 필요없는 살림들을 처분하면서 이 사인 역시 쓰레기봉투로... 안녕 콜린 퍼스.. 안녕 내 20대여..
클로즈업 샷도 하나 찍었었지.
그 때 콜린퍼스가 악수도 해주었는데, 평생 손을 씻지 않겠다고 있는 호들갑은 다 떨어놓고는
지금 나는 하루에 10번도 넘게 손을 씻는 여자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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