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살면서 가장 아쉬운 점 중 하나는 한국어로 쓰여진 (종이)책을 사서 읽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서점에서 한국어 책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공공도서관에 아주 작게 한국어책 섹션이 있으나 대부분 기부 받은 책들로 오래된 책들로 이미 읽어봤거나 관심이 가지 않는 주제들이 많습니다. 밴쿠버로 이사온 지 얼마 안되었을 때는 한국책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자, 일정 금액 이상 주문하면 무료로 배송해주는 <알라딘 US>를 통해 책을 주문하여 캐나다에서 바로 건너갈 수 있는 미국 국경도시 내 우편물 수취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로 우선 받은 후 국경을 넘어가서 책을 가져오는 방법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번 국경을 넘는 건 피곤하고 수고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구한 답은 바로 e-book 이었습니다. 교보문고, 알라딘, 밀리의 서재, 리디북스 등 e-book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양한 업체들이 있고 본인 취향에 맞는 서비스를 선택하면 되는데요, 전 어쩌다보니 리디북스(Ridibooks)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달에 6,500원(2019년 기준)을 결제하면 매달 선정된 책들을 제한 없이 읽어볼 수 있는 리디셀렉트(RidiSelect)가 출시되면서 마음껏 한국 책을 읽어볼 수 있게 되었지요. 오래전에 이민 오신 분들은 상상도 못하셨을 엄청난 혜택이 아닌가 싶습니다.
리디셀렉트를 구독하는 동안은 리스트의 책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데요, 덕분에 일주일에 5-6권은 읽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한창 뜨고 있고 막 서점에 나온 뜨끈뜨끈한 책들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만, 그래도 이게 어딥니까. 세상에 읽을 책은 너무나 많으니, 우선 이런 책들을 천천히 읽어나가다보면 서점의 베스트셀러나 신책들도 언젠가 읽어볼 수 있겠지 하는 기대로 일년 구독을 신청하였습니다.
이렇게 이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지는 몇 년이 되었는데요, 예상하실만한 내용이리라 생각합니다만, 장점과 단점은 이렇습니다.
장점
1. 경제적 부담이 덜하다 - 한권 한권 사서 읽는다고 해도 보통 서점의 종이책 정가보다는 10-20% 저렴합니다. 리디셀렉트같은 구독 서비스를 신청한다면 한달에 커피 1-2잔 값으로 수십권의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2. 환경 친화적이다 - 디지털 형식의 이북은 종이와 같은 자재를 소모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도 환경에 기여하고 있구나 하는 의도치않은(?) 뿌듯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3. 관심 영역이 확대되고 다양한 책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 서점의 책꽂이에 꽂아진 책을 한권 한권 빼서 손에 쥐고 읽는 맛에는 비할 바가 못됩니다만, 물리적인 한계로 인해 서점에서는 많은 책을 한번에 둘러보기가 어렵습니다. 서점에서 자체적으로 추천 서적을 골라 잘 보이게 디스플레이 해놓긴 합니다만, 장에 꽂힌 책들을 제목만 읽고 꺼내서 훑어보는데는 에너지와 시간이 소요되지요. 반면 이북 선택 시는 스크롤만 내리면 수백권의 책의 표지와 제목, 저자 간단한 내용 요약 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저는 평소에 잘 모르던 분야나 관심이 덜했던 분야의 책들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단점
1. 집중력이 떨어진다 - 손에 딱 쥐고 페이지를 넘기는 종이책에 비해 아무래도 집중력이 떨어지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북만 주구장창 읽다보니 갈수록 나아지는 느낌이긴 합니다.
2. 이북 리더기의 한계 - 전 재작년에 리디북스에서 판매하는 이북리더기(리디페이퍼)를 30만원 가량 주고 샀었는데요, 괜찮긴합니다만 손이 잘 안갑니다. 가장 큰 이유는 작동 자체가 너무 느리기 때문인데요, 책장을 열어보고 다운로드 하는 과정이 성미급한 저에게는 여전히 거북이 느림보처럼 느껴집니다. 반면 아이패드는 속도감이나 화면의 선명함 측면에서 훨씬 우월해서 요즘은 주로 아이패드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 때 단점은 밤에 읽을 경우 밝은 빛으로 인해 수면에 확실히 지장을 준다는 점입니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행운인가 싶기도 합니다.
이렇게 인터넷이 발달하고 e-book 이 국내에서도 상용화되기 이전에 캐나다나 미국으로 이민을 오셨던 분들에게는 한국책 자체가 귀하고 구하는 일이 얼마나 번거로웠을까요. 한국에서 보내서 배송을 받으면 되지 싶지만 책이라는 게 상당한 무게가 있기 때문에 선편으로 보내지 않는다면 배송비가 만만치 않습니다. 선편은 한번 보낼때마다 1-2달은 기다려야하고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우편 시스템에 혼란이 온 요즘 같은 때에는 기본 3-4달을 기다려야 합니다.)
저는 요즘 제 아이도 아이패드로 한국 그림책을 읽게 합니다. 어찌나 잘 되어있는지 새로운 책도 자주 올라오고 부모들의 협업체제가 구축되어 있어 본인의 아이를 위해 책을 읽는 과정을 녹음해두면 다른 아이도 녹음파일을 들을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저도 몇 번 도전해볼까 했는데요, 저보다 훨씬 잘 읽는 분들이 많아서 지금은 그 분들의 재능과 노력에 감사하며 열심히 하트만 누르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어린이책 이북에 대해서도 나중에 포스팅해보겠습니다.
COVID-19 으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이에 따라 많은 분들이 집에서 책을 읽는 시간 역시 늘어나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캐나다에서 가장 큰 온라인 서점인 인디고(Indigo.ca)는 엄청난 주문량으로 때아닌 호황을 맞고 있습니다. 최근 리디셀렉트에서 재밌게 읽은 책을 원서로 주문할까 하고 들어갔더니 이미 품절이더군요. 책이 품절되는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닌듯 싶은데 아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주문량이 늘어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힘들고 불안한 시기이지만, 그래도 인터넷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그리고 이를 매개로 한국의 수많은 지성인들의 이야기를 이북의 형태로 접할 수 있고 이런 식으로 소통의 창구가 열려있다는 점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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