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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발리

즐거운 소란이 지나간 이후

by 레잇블루머 2015. 6. 19.

삼촌 가족이 발리로 오셔서 우리집에서 8일간을 함께 보냈다. 만난지 20년, 부부로서 함께 산지는 18년이 된 삼촌네 부부는 중학교 2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 딸 둘을 두고 있는데, 처음하는 해외여행이라 기대와 흥분을 한보따리 품고 오셨다. 10대 아이들보다 더 호기심이 많고 열정적인 삼촌과 관광객 느낌을 한껏 내고 싶었던 외숙모 덕분에 일주일간 정말 정신없이 보냈는데, 서핑, 래프팅, 우붓시내 구경, 동물원 방문, 쇼핑, 비치워크 프리미어 극장에서 영화보기, 짐바란 씨푸드 등등 다채로운 관광코스를 쭉 밟았다. 그리고 오늘 삼촌네가 한국으로 돌아갔다.

사람이 4명이나 늘어서 복작거리고 수다와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던 집에는 다시 적막이 흐르고 나는 아무일없었던 것처럼 재즈 라디오를 들으며 블로깅을 한다. 하지만 뭔가 허하고 쓸쓸한게 오랜만에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내다가 갑자기 뚝 끊겨버렸기 때문인가. 

이 삼촌은 세 외삼촌들 중 가장 멋쟁이이자 다정한 이였다. 일본 출장을 다녀오며 삼촌이 사다주었던 스탬프 장난감을 애지중지 아끼며 가지고 놀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삼촌이 오토바이를 태워주겠다며 나를 뒤에 태우고 가다가 넘어졌던 기억. 군대에서 소령으로 근무할 때 몰래 나를 데리고 가서 구경시켜주었던 기억. 엄마가 집에 노래방 기계를 설치하자, 노래를 좋아하는 삼촌이 가는길에 우리집에 들러서 멋지게 한곡 뽑아주고 가셨던 기억. 어린 나를 앉혀놓고 진지하게 무서운 얘기를 해주셨던 기억. 처음 나를 극장에 데려가주신것도 삼촌이고, 피자를 맛보게 해준 것도 삼촌이었다. 삐삐가 생겼을 시절, 부모님이 반대했지만 삼촌이 몰래 삐삐를 사다가 내 손에 쥐어주셨지. 이 삼촌과는 즐거운 기억들이 너무나 많다.

바바리 코트 깃을 멋지게 세우고 다녔던 날씬했던 삼촌은 배불뚝이 아저씨가 되어버렸지만 내 눈엔 여전히 멋지고 좋은 사람. 항상 건강하고 슬픔없이 사시길. 천사같이 착한 삼촌의 아이들도 잘 챙겨줘야겠다고 다짐한다. 벌써 보고싶다. 잘 지내세요. 그리고 곧 또 만나요. 



귀여운 녀석들. 언니가 많이 사랑한다. 


삼촌네랑 꾸따비치로 서핑갔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