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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발리

[KEDAI SOBI] 케다이 소비, 발리 힙스터들의 백반집

by 레잇블루머 2020. 5. 23.

흔히 처음 발리를 여행하실 땐 블로그나 여행 잡지 등을 통해 유명한 식당이나 트렌디한 맛집들을 위주로 식사를 즐기시게 되는데요, 전세계 관광객들이 찾는 발리이니만큼 정말 다양한 나라의 음식들을 높은 수준으로 즐기실 수 있습니다. 요기들이 자주 찾는 유기농 채식 레스토랑부터 신선한 해산물 식당, 바비굴링(Babi guling)과 같은 현지 유명식당 등 발리엔 먹거리들이 넘쳐납니다. 짧은 여행 기간 동안 이런 유명한 맛집 몇곳만 도는 것도 바쁜 일이지요. 

하지만 발리에 오래 머물거나, 자주 가시게 되면, 발리인들의 식생활이 한국의 그것과 매우 닮아있다는 걸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산업화 이전의 한국처럼 발리는 쌀농사를 짓는 농경문화가 발달하여 있고 여전히 관광지 이외 지역에 사는 대부분의 발리인들은 농사를 짓습니다. 그리고 생산한 쌀로 밥을 지어 다양한 반찬과 곁들여 먹지요. 한국처럼 이런 반찬의 종류만 해도 수십가지 또는 그 이상입니다. 나물 무침도 많고 매콤하니 한국인들의 입맛에 꼭 맞는 매운 반찬들이 즐비합니다. 반찬만 있는게 아닙니다. 발리에 얼큰한 국물 요리도 의외로 많다는 걸 아시나요? 잘 찾아보면 현지인들만 가는 맛집들 중에 국물요리 맛집들이 상당히 많답니다. 사누르 지역에 가면 대통령이나 인도네시아 연예인들이 찾아와서 줄 서서 먹는 생선국 맛집이 있는데요 나중에 한번 포스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서문이 길었네요.

오늘 포스팅의 주제는 '발리 힙스터도 결국엔 백반이 제일 좋다.' 입니다. 

저도 한때 이태원을 흩날리는 힙스터 비스꼬롬한 존재이던 시절이 있었지요. 지금은 쇠퇴한 경리단이 떠오르기 전부터 그 곳에 살면서 온갖 트렌디한 레스토랑과 카페들을 섭렵하며 돈을 뿌리고 다녔습니다. 친구들을 만나면 무조건 이색적이고 분위기 좋은 곳들을 찾아다녔는데요, 그래도 한국인인 이상 과음한 다음날이나 약속이 없는 날엔 숨어있는 밥집들을 찾아 속을 달래곤 했습니다. 다들 그런 경험 있지 않으신가요? 아무리 맛있는 외국 음식을 먹어도 이걸 연달아 먹으면 속이 느끼해져서 얼큰한 국물이나 매운 한국음식을 넣어줘야 속이 풀리는 현상 말이지요. 

발리의 젊은이들도 비슷한가봅니다. 발리에 자본이 물밀듯 들어오기 시작한 이래 발리에도 부자들이 많이 생겼고 그들의 자식들은 패션센스와 힙함으로 무장한 힙스터로 자라났습니다. 그들은 발리 투어리즘이 꽃피워낸 다양한 문화자본들을 향유하며 발리 섬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전세계인을 친구로 사귀며 트렌디한 음악와 음식, 놀이문화를 접하며 자랐습니다. 제가 7년 넘게 사귄 이 친구도 그런 힙스터 중 한명인데요, 처음 만났을 때 제 스스로가 촌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세련됨이 뿜뿜하는 친구로 포토그래피 일을 하고 있었지요. 돈도 잘 벌어서 큰 3층집을 하나 사서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 친구가 어느날 연락해서 식당을 열었다고 합니다. 카페도 아니고 식당을? 의아했지요. 

발리 힙스터인 친구가 연 식당은 다름아닌 발리 백반집이었습니다. 

친구가 연 식당의 모습입니다.

 

인더스트리얼리즘과 미니멀리즘이 돋보이는 백반집입니다. 

두 번 물었습니다. 

"식당? 진짜? 너가? 식당을?"

"요리는 누가 해?"

"응, 내가."

"WHAT!!!?? YOU????"

이 친구가 요리 하는 모습은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식당을 차렸고 무려 요리는 자기가 한다는 겁니다. 믿을 수가 없어서 요리 한 걸 좀 보자고 했더니 포토그래퍼답게 바로 찍어 보내는건데 쓸데없이 코퀄리티인 음식 사진들을 보내줍니다.;; 

발리인들은 보통 가운데 저렇게 쌀밥을 놓고 다양한 반찬을 빙 둘러 먹습니다. 한국의 백반과 비슷한 개념이지요. 
오른쪽의 튀김은 돼지껍질을 튀긴것일텐데 짭조롬하니 술안주로 저만한게 없습니다. 

 

이런 식의 음식은 나시 짬뿌르(Nasi Campur)라고 하는데요, 나시는 쌀밥을 의미합니다. 나시 뿌띠(Nasi Putih)는 흰쌀밥을 뜻하지요. 인도네시아에서도 흔히 이렇게 먹는데 발리에서는 반찬의 재료나 향이 좀 달라집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좀 더 코코넛을 많이 쓰고 덜 자극적이에요. 

자주 만나고 얘기를 나눴던 친구였습니다만 항상 발리의 번화한 어딘가의 세련된 카페나 호텔에서만 만나 놀았기 때문에 이 친구가 요리를 이렇게 잘하는지 식당할 생각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얘기를 나눠보니 쌀도 싸구려가 아닌 자기 홈타운에서 직접 기른 쌀을 공수받아 쓴다고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바로 이 친구입니다. 예전엔 좀 더 핸썸했습니다만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이후로 살이 좀 붙었습니다. 

 

식당 전경입니다. 평범한 발리 백반집처럼 보이지는 않지요. 

 

가격대를 보아하니 보통 발리 나시짬뿌르 집보다는 훨씬 비쌉니다. 아무래도 돈이 있는 발리 젊은이들을 타겟으로 한 식당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최근 얘기를 나누어보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발리 관광객 숫자가 급격히 줄어서 포토그래피 일은 쉬면서 식당일에 전념하고 있다고 합니다. 밭에서 채소 기르는 사진도 보내주었는데 이제 음식에 들어갈 재료까지 직접 키우려나봅니다. 

혹시나 관심이 가시는 분들을 위해, 지도 하나 첨부합니다. 이 지도를 보시고 

"대체 어떻게 찾아가란 말이야? 주소를 줘야지!" 하고 분노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 같은데요, 발리의 희한한 주소 체계와 목적지를 찾아가는 운전기사들의 초능력에 대해서 나중에 따로 길게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여기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발리의 택시기사나 운전기사한테 이 지도를 주면 어떻게든 알아서 찾아갈 수 있습니다. ㅋㅋ 99%의 확률로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