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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발리

발리 졸부들의 탄생과 부작용 그리고 발리 부동산 시장

by 레잇블루머 2020. 5. 24.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발리섬에도 긴 휴식이 찾아왔습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떠나면서 신들의 섬은 더이상 호텔과 클럽, 레스토랑, 기념품샵으로 바글거리는 관광지가 아닌, 조용한 원래 자연의 모습을 빠르게 되찾아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돈벌이를 찾아 서구 자본이 운영하는 호텔이나 리조트가 몰려있는 남쪽으로 모여들었던 발리인들도 지금은 고향으로 잠시 돌아가거나 집에 머물면서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한동안 이 아름다운 섬을 갈 수 없게 된 점은 슬프지만, 사실 발리섬에게 지금과 같은 브레이크는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처음 이 섬의 아름다움이 발견되기 시작한 이후, 본격적으로 서구 자본이 들어오고 서양 단체여행객들을 시작으로 수십년 후 아시아 지역국가들의 부상과 더불어 본격적인 대중 해외여행이 시작되면서 발리섬은 그야말로 과포화상태가 되었습니다. 발리를 가보신 분들이라면 기억하실겁니다. 비행기 착륙과 더불어 공항밖으로 나오기까지 최소 1-2시간은 걸리고, 여행 내내 이어지는 지독한 교통체증과 인파... 너무나 매력이 많은 발리이기에 이런 불편함을 모두 감수할 수 있었지만 솔직히 인정해야합니다. 발리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자연이 크게 훼손되었으며 발리 내 공동체에 자본 논리가 본격적으로 침투하면서 여러 사회적 악영향이 발생했다는 것을요. 

발리섬은 코비드19 덕분에(?) 간만에 휴식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발리에 가보셨다면 울루와뚜(Uluwatu)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울루와뚜는 발리의 남서쪽 인도양을 맞보고 있는 지역으로, 울루와뚜라는 말 자체가 절벽을 의미합니다. 

전통적인 농경 사회였던 발리에서, 이 바다 가까운 곳의 울루와뚜는 절벽에 땅이 비옥하지 못해 농사짓기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이 곳은 농경지가 없는 가난한 이들이 모여사는 아주 가난한 동네였다고 하는데요, 서구 자본이 들어오면서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됩니다. 바로 관광객이 선호하는 오션뷰 호텔을 짓기 위해 울루와뚜의 땅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 때 울루와뚜에 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떼부자가 되며 졸부들이 대거 탄생했다고 합니다. 

울루와뚜는 아주 극적인 케이스입니다만, 사실 발리의 개발된 지역 전체가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농사 지으며 아주 느리게 살아가던 발리인들에게 돈다발을 든 외국인들이 나타납니다. 자본가들은 발리 응우랄라이 국제공항을 중심으로 빠르게 호텔, 리조트 등을 세워올립니다. 갑자기 돈방석에 앉게된 발리인들은 더이상 농사를 짓지 않습니다. 여전히 하루 세번 오퍼링을 하고 일년 내내 이어지는 세레모니 등 관습과 전통을 이어가고 있긴 하나 이미 상당 수 반자르(발리 내 지역 공동체)들은 자기 반자르가 위치한 땅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익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관광객들에게 별의별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갈수록 발리에서 데스티네이션웨딩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이런 웨딩을 할 때, 결혼식이 치뤄지는 곳을 관장하는 반자르는 단순히 자기 동네에서 결혼식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돈을 요구합니다. 금액은 대략 우리돈으로 30만원에서 60만원대 사이로 반자르에서 어떤 협조나 도움을 주는 게 아닌데도 무조건 내야만 하는 돈입니다. 어떤 반자르들은 결혼하는 커플의 여권 사본도 요구합니다. 동성간 결혼을 막기 위해서인데요, 발리에서 데스티네이션 웨딩을 하는 게이 커플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이를 막기위해 보수적인 반자르에서 커플이 동성인지 여부를 미리 확인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혼하는 커플이 반자르 내에서 살 것도 아니고 비싼 돈을 치르며 발리까지 와서 행복한 웨딩을 하겠다는 것인데, 참석도 안하고 아무 도움도 주지 않는 반자르가 이런 식의 개입을 하는 건 어찌보면 선을 꽤 넘고 있는 게 아닌가싶습니다. 

또 하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관광객들이 자주 드나드는 지역들의 많은 반자르들은 운전기사 카르텔을 형성합니다. 즉, 저렴한 우버나 그랩같은 서비스를 이용하지말고 자기 반자르의 운전기사들을 이용하도록 반강제하는 것인데요, 우버에 비해 비용이 훨씬 비싸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되도록 우버를 이용하려고 시도합니다. 문제는 우버기사들의 안전입니다. 이런 반자르 카르텔들은 우버 기사들이 자기들 영역에서 영업을 할 수 없도록 감시하고 발견할 경우 쫓아내는데요, 이 과정에서 우버기사들이 집단폭행을 당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습니다. 짱구(Canggu) 지역에 살때 저도 한번 목격한 적이 있었는데요, 아시아 여성 2명이 짱구의 한 인기 카페로 우버를 불렀는데 이를 발견한 반자르 지역민들이 가차없이 우버 기사를 폭행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요?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발리 내 경찰력이 견고하지 못하고 상당 수 경찰들이 부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경찰들은 여러 이유로 반자르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반자르들의 운전기사 카르텔이 정점에 이른 케이스는 우붓(Ubud)입니다. 에술가들의 마을, 평화롭고 아름다운 우붓에는 우버 기사들이 발도 딛을 수 없습니다. 물론 손님을 태우고 와서 얼른 다른 손님을 태우고 사라지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만, 혹시나 카르텔이 이들을 잡아내기 위해 가짜로 우버콜을 하는 경우 난감한 상황에 맞닥들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우붓은 택시 서비스를 이용하기에 가장 비싼 곳이 되었습니다. 가까운 5분 거리를 가더라도 5천원은 기본입니다. 한국보다 더 비쌉니다. 잘 흥정하면 더 싸게 이용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보통은 숙소가 위치한 곳의 반자르에서 기사를 불러 다니기 때문에 가격은 고정되어 있는 편입니다. 

 


 

물론 반자르의 입장도 이해는 갑니다. 땅을 산 또는 빌린 외국인들은 본래 자기들 땅에서 화수분처럼 돈을 펑펑 벌어들이고 있는데 자신들은 그에 비하면 푼돈만 받고 뒤에서 그걸 보고만 있어야한다는 게 억울할 겁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명목을 세워 자신들의 몫을 받아내고자 하는 것이겠지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인도네시아 정부도 뒤늦게 알아차리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토지 구입 및 이용 조건을 훨씬 까다롭게 하는 법안들을 시행 중입니다. 공식적으로 외국인은 발리 토지를 구입할 수 없으며 다만 10년, 20년 등의 단위로 빌리는 것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영리한 사업가들은 어쨌거나 길을 찾아냅니다. 발리인(인도네시아인)을 계약 대리인으로 내세워 토지를 사들이는 것입니다. 물론 이 대리인이 뒷통수를 치는 드문 경우도 발생하고 개인 사업자들의 경우 이로 인해 큰 피해를 보기도 합니다만, 기업 및 부자들은 더 안전하고 빈틈없는 전략으로 토지를 확보합니다. 

 

원래 땅이 없었던 어부들이나 개발이 안된 지역의 발리인들은 여전히 예전 그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발리에 여행왔다가 발리의 매력에 푹 빠져서 '아 나도 발리에 살아보고 싶다!' 하는 생각 하신 분 있으신가요? 아마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발리에서 만났던 친구 중에는 무려 40여년전 발리에 여행왔다가 발리와 사랑에 빠져 그대로 쭉 발리에 살아오고 있는 여성이 있습니다. 발리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이전에 온 덕에 발리인들과도 오랜 인연과 신뢰를 쌓고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땅을 사서 예쁜 집도 지어 게스트하우스를 성공적으로 잘 운영하고 있습니다. 

초창기 이민자들이 기반을 다진 이후에는 발리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호주인들이 발리에 별장을 지으면서 발리 부동산 시장을 들썩이게 했었죠. 넓은 수영장이 딸린 베드룸 3-5개 사이의 깔끔하고 현대적인 별장 목적의 빌라를 지어놓고 저가항공을 타고 와 몇달씩 발리에 머물면서 여유로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세계 경제의 호황과 본격적인 해외여행의 시대가 도래하며 건설사들은 발빠르게 발리에 수많은 럭셔리 프라이빗 빌라들을 짓기 시작하는데요, 현재 이런 빌라들의 가격대는 수십억에서 수백억대 사이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빌라들의 가격도 해를 거듭하며 치솟아 20년, 25년 단위로 빌리기만 하는 집의 시세가 기본적으로 억 단위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돈만 바라보고 날림으로 지은 겉보기에만 그럴싸한 빌라들. 애정을 갖고 짓긴 지었으나 몇년 살아보니 단조로운 발리 생활에 질린 외국인들이 내놓은 집들. 발리 부동산 웹사이트 몇곳만 들어가봐도 이런 빌라들이 수두룩합니다. 발리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빠지면 모든 게 아름다워 보이기 때문에 이런 집들이 모두 좋아보이고 그 허무맹랑한 가격마저 타당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런 빌라를 구입하는 행위 뒤에는 여러 주택관리의 문제들과 필연적으로 많은 발리인/인도네시아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게되는 라이프스타일이 뒤따르게 되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상세히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발리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저는 솔직히 이 COVID-19이 곪아가고 있던 발리의 여러 문제들에 제동을 걸어준 아주 고마운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자본과 상업논리의 침투에 방어력없이 그대로 휘둘려왔던 발리에 간만에 숨통이 트인 것입니다. 이 시기를 거치며 미친듯 폭주하던 발리의 부동산 시장이 냉정을 되찾고, 다시 외부인들이 찾기 시작하여도 본래의 발리의 문화와 정수를 잃지 않도록 발리인들이 중심을 잡고 본연의 모습을 유지할 충분한 시간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